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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일본해군이 함대의 통로로써 인공적으로 굴삭한 해협에 다리를 세웠으며 이는 현재 둘로 나뉘어진 대마도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만조시의 조류는 여러 겹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 초대 만제키바시 (1900년 완성)
옛 일본해군에 의해 건설된 철교로 길이 100m, 폭 5.5m, 높이 약 36m이다.
- 2대 만제키바시 (1956년 완성)
낙도진흥법에 따라 완성된 아치형 철교. 길이 약 81m, 폭 5.5m, 높이 약 30m로 이 다리의 완성으 로 버스가 섬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었다.
- 3대 만제키바시 (1996년 완성)
전체 길이 210m, 폭 10m. 섬 전체의 도로망도 정비되어 남북을 연결하는 심리적 거리도 가까워 졌다.
만제끼 바시의 역사적 의미
이 다리는 일본이 자랑하는 러일전쟁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던 '쓰시마 해전'의 대승을 가져다준 아주 의미 있는 다리이다.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의 틈바구니에는 조선의 우선권이 중심에 있었다.
러일 전쟁의 기록을 살펴보면
1904년 2월 4일 일본은 대(對)러시아 개전(開戰), 국교단절을 결정하고, 8일에는 육군 선발대가 한국의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향하고, 한편 뤼순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어 10일 러·일 양국으로부터 선전 포고되었다. 서전에서 일본군은 한국을 제압하고, 한국에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를 강요해 유리한 전략체제를 확립하였다.
4월 하순 한국에 상륙, 북상한 일본 제1군은 5월 초 압록강 연안에서 러시아군과 충돌하여 격파했고, 같은 달 랴오둥반도[遼東半島]에 상륙한 제2군은 난산[南山] ·다롄[大連]을 점령하고 뤼순을 고립시켰다. 다시 6월에는 만주군 일본총사령부를 설치하고 15개 사단을 동원하였다. 8월 랴오양[遼陽] 부근에서 양국군이 첫번째 대규모적인 접전을 벌였고, 10월의 사허후이전투[沙河會戰鬪], 1905년 1월의 헤이거우타이전[黑溝臺戰] 등의 전투에서 일본군은 고전 끝에 모두 승리하였다.
한편 뤼순의 러시아 함대는 블라디보스토크로 탈출을 꾀하였으나, 8월 황해에서 일본 해군의 총공격을 받고 항구 안에 봉쇄당하였다. 뤼순 공략을 맡은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의 제3군은 여러 차례에 걸친 203고지 공격으로 많은 손실을 보았지만 1905년 1월 드디어 공략에 성공하였다. 유럽으로부터 지원군을 얻은 크로파트킹 지휘하의 러시아군 32만과 오야마 이와오[大山嚴]가 이끄는 일본군 25만은 3월에 펑톈[奉天:현 瀋陽]에서 회전(會戰), 러시아군이 패퇴하였으나 일본군도 사상자가 7만에 이르는 큰 손실을 보았다. 한편 러시아는 육전(陸戰)에서의 패배를 해전에서 만회하려고 로제스트벤스키 지휘하의 발틱함대를 회항시켜 5월 27,28일 대한해협에서 대해전을 전개하였으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가 이끄는 일본 연합함대에 격파되어 전멸하였다.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제독은 대마도 아소만에 미리 함정을 대기시켜 발틱함대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으며 시간이 촉박한 발틱함대가 최단거리인 쓰시마를 통과하게 되자 이를 기습 공격하여 대승을 거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