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5(목)~9.27(토), 대마도여행을 다녀오고나서(이은희 가이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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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춘섭 작성일14-09-28 18:28 조회1,19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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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5(목)~9.27(토), 대마도여행을 다녀오고나서(이은희 가이드님)
안녕하세요. 9.25(목)~9.27(토) 대마도여행을 다녀온 송춘섭입니다.
바쁜 직장생활 가운데 평일에 이틀 휴가를 내고 직원들 7명이 함께 한 멋진 추억여행이었다. 출발전날 오전까지만 해도 굵은 빗줄기가 계속내려 배가 못뜰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다행히도 오후부터는 비가 그쳐 가벼운 마음으로 퇴근후 서울역에서 KTX를 탈수 있었다. 2시간 40여분을 달려 도착한 부산. 숙소를 해운대 한화콘도를 잡은관계로 전철을 1시간동안이나 타고나서야 겨우 부산에서 유명한 금수복국 식당에 도착해 복국 한 그릇과 소주한잔으로 피로를 씻었다.
숙소로 와서 대충씻고 잠들어 새벽 6시에 모두 기상하여 눈꼽만 떼고 택시를 타고 부산여객터미널에 예정보다 빠른 7시10분 도착했다. 가이드 미팅시간이 여유가 있어 인근식당에서 계란후라이에 반찬 5가지, 시래기국까지 나오는 맛있는 백반을 먹었는데 놀라지 마시라. 값이 3500원에 불과했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인근 커피숍에서 먹은 커피 한잔은 밥값보다 1000원이 더비싼 4500원이었다. 커피값에 참 거품이 많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이은희 가이드님을 만나 여행전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코비호에 몸을 실었다. 배멀미가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에 불과했고 운항시간도 1시간여에 불과해 편안하게 대마도 히타카즈항에 도착했다.

이렇게 해서 시작한 3일동안 대마도 관광은 주로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된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이었는데 기대밖의 아주 만족할만한 여행이었다.

첫날은 미우다 해수욕장, 한국전망대, 조선역관사 순난지비 등을 둘러보고 우동과 김밥튀김 등을 먹었는데 중국이나 동남아국가보다는 입맛에 맞아 일행들 모두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점심식사후 에보시타케 전망대, 와타츠미신사, 만관교 등을 둘러봤는데 이은히 가이드님의 친절한 설명덕분에 한번 보고 지나칠 관광지에 역사적 의미를 더하게 되어 참 뜻깊었다.
특히 원래 하나의 섬이었던 대마도를 둘로 가른 인공운하에 놓인 빨간 다리 만관교에 그렇게 슬픈 역사가 있을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 원래 운하를 가로지른 다리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러시아의 발틱함대에 승리한 '전승의 다리'. 한국에는 35년 한일합병의 계기가 되는 '통한의 다리'가 되어 기분이 묘했다.

 둘째날은 오전에 대마도 최남단 쯔쯔자키공원, 아유모도시공원을 관람했다. 오후에는 이번여행에서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 시간이었다. 아소만 마다 한가운데에서 체험한 낚시에서 거짓말처럼 60cm  3kg이상 나가는 큰  ‘도미’를 함께 간 동료가 낚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바닥에 걸렸다고 투덜거렸는데 노련한 선장님 덕분에 무사히 들채로 들어 올렸는데 모두들 기쁨과 놀람으로 환호했다. 다른 일행들도 정갱와 작은 도미들을 15마리 이상 낚아 선장님이 손수 손질해주신 회와 소주로 피로를 말끔하게 날려 버렸다. 몇일 지난 지금도 눈앞에서 그 시간에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 저녁에는 ‘이리야키’라는 돌판에 소고기과 야채, 해산물 등을 구워먹었는데 너무 맛있게 먹어 살찌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셋째날은 이즈하라 시내에 있는 금석성과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 조선통신사비, 고려문, 면암 최익현 선생 순국비와 수선사를 방문했다.

그중 최익현 선생과 덕혜옹주에 얽힌 이야기를 이은히 가이드님의 명해설로 들어 더더욱 슬픈 역사에 눈물이 찔끔났다.
간략하게 소개하면, 최익현 선생은 을사조약을 반대하고 의병을 일으켰다가 체포되어 대마도로 압송되어 식음을 전폐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장례는 백제의 비구니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수선사에서 치러졌으며 그곳에 최익현 선생의 넋을 기리고자 1986년에 비를 세웠다고 한다.
최익현 선생이 쓰시마로 유배 떠나기 전에 우리나라 흙을 밟고 살겠다고 버선과 신발사이에 우리나라 흙을 담아 갔으며 일본이 주는 식사는 거부하며 식음을 전폐하시다가 순국하시었다. 이처럼 최익현 순국비(修善寺)에도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역사를 간직한 한 곳이다. 왠지 가슴이 아려오고 뭉클해짐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덕혜옹주는 고종과 복녕당양씨 사이의 딸로 일출소학교 5학년이던 1925년 일제에 의하여 볼모로 일본에 끌려가 동경 학습원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외로움과 향수병으로 정신질환인 조발성 치매증으로 고생하였다.
1931년 대마도 번주의 아들인 소다케시(宗武志) 백작과 강제 결혼하여 3년만에 딸(宗正惠)을 얻었으나 지병이 계속되었다. 1951년 이혼을 당하였고, 딸이 결혼에 실패하여 현해탄에 투신자살하여 병세가 악화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1962년 1월 26일 38년만에 귀국할 수 있었다. 귀국 직후부터 5년간 서울대학교 대학병원에 입원하였다. 그 후 창경궁 낙선재와 연결되어 있던 수강재에 칩거하였다. 계속된 치료에도 병세는 호전되지 않다가 1989년 4월 별세하였다. 그 해 4월 25일 경기도 미금시 금곡동에 소재한 홍유릉 부속림에 안장되었다.

힘없는 국가로 인해 원치 않은 삶을 살다가신 최익현 선생과 덕혜옹주를 생각하면 가슴이 시려온다. 두분 모두 부디 근심걱정없는 편안한 곳에서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한다.

부산에서 불과 49.5km 밖에 떨어져있는 대마도 여행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우리나라의 가슴아픈 역사를 알게 된 의미있는 역사여행이 되어 더 뜻깊은 여행이었다.
머지 않은 시점에 우리가족들과 꼭 다시 한번 찾게 될 것 같다.

아무쪼록 2박3일간 베스트 친절로 함께 해주신 이은히 가이드님과 대마도 투어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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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대마도님의 댓글

대마도 작성일

  송준섭 선생님 감사합니다~^^
오랜세월 쌓아온 동료분들과의 우의 더욱 돈독히 하며,
즐거운 시간 되신 듯해 ,기쁨입니다ㅎ
모두 너무 예의바르시고 젊잖으신 분들이신이어,
투어내내 참 편안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낚시시 즐거워하시던 모습이 많이생각납니다
귀한시간 내어 적어주신 후기 정말 감사드리구요
좋은 분들과 여행많이 다니시구요~^^
모쪼록 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가이드 이 은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