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마라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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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병준 작성일09-08-04 14:17 조회3,148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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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마라톤 클럽 황 병 준

 양산마라톤 12년 역사상 처음으로 소규모지만 단체 해외 마라톤대회 참가를 위해 뜻있는 회원 13명이 2009년 7월 4일 대마도 국경 마라톤 장도에 올랐다. 양산지하철 역에서 마중 나온 회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부산국제 여객터미널로 향했다. 첫 해외대회 참가라서 그런지 기대와 설레임으로 회원들의 표정이 소풍가는 초등학생처럼 상기되어 즐거운 농담들을 주고받는다.

 터미널에는 대마도로 가는 많은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하다. 우리처럼 마라톤 복장으로 대회참가하러 가는 사람, 낚싯대를 매고 낚시여행을 떠나는 사람, 등산복 차림의 등산여행을 떠나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다. 대마도 Tour의 가이드와 미팅 후 간단한 출국 수속을 끝내고 쾌속선 씨 플라워호에 몸을 실었다.
오전 10시 쾌속선은 잔잔한 물결을 헤치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최대의 무역항답게 항구에서는 대형 크레인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컨테이너들을 옮기는 모습에서 세계적인 교역국으로 부상한 우리경제의 힘을 느낀다.
오륙도를 지나면서 쾌속선은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장마철이라 날씨에 대한 염려가 많았는데 오늘따라 너무 쾌청하다. 배를 타고 있는 지 못 느낄 정도로 물결이 너무나 잔잔하다.

 1시간 20분 정도 지난 후 우측 창 너머로 대마도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올망졸망한 산들이며 해안 절벽의 바위들이 우리나라 남해의 어느 섬이나 크게 다른 것이 없으나 숲은 더 울창한 것 같다.
아침 이른 출발로 허전한 배속을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도시락으로 채우고 반주 몇 잔을 걸치니 이 또한 색다른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맑은 날이면 부산에서 보일 정도로 가까운 섬이지만 남북으로 길쭉하게 뻗어 있어 그 길이가 82Km이며, 우리나라 제주도의 40%정도나 되는 큰 섬으로 해안선을 따라 대마도에서 가장 번화가인 목적지 이즈하라 항까지는 약 3시간 정도가 소요되어 오후 1시정도 쾌속선은 이즈하라 항에 접안한다.
1984년 일본 본토를 방문한 후 무려 26년만에 다시 일본 땅을 밟으니 감개가 무량하다.

 모두들 즐거운 표정으로 짐을 챙겨 항구에 내렸으나 작렬하는 햇볕아래 길게 늘어서 순서를 기다리는 입국장의 모습에서 대마도의 첫인상이 여지없이 구겨졌다.
코딱지만한 허름한 입국장에는 장시간 여행으로 지친 여행객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요즈음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입국장 시설을 보니󰡒이건 아니올시다󰡓이다. 낡은 시설에 나가는 구멍은 두 군데 뿐이다.
풀코스 뛸 때보다 더한 인내심을 발휘하여 지문채취, 사진촬영을 마치고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간신히 지옥의 입국장을 탈출할 수 있었다. 성질 급한 한국사람들 몇명이 찌푸린 인상으로 한마디씩 불평을 한다.
󰡒이기 뭐고! 왜놈들 선진국 좋아하시네. 한국 같으면 이따위로 하다간 절단난다. 에이! 개자슥들!󰡓외국 나오니 전부 애국자가 다 된 것 같다.

 짐을 대기중인 버스에 실어놓고 시내 관광에 들어간다. 대마도 인구의 절반이 사는 가장 번화가라고는 하나 현지인들의 모습은 간혹 눈에 뜨일 정도이고 좁은 길가에 자그마한 낡은 집들이 올망졸망 늘어선 모습이나 길가에 늘어선 작은 구멍가게의 허름한 간판들을 보니 70년대의 우리 소도시 모습이 떠 오른다. 일본어와 섞인 한자의 뜻을 대충 해석해 보니 무엇을 파는 상점인지는 짐작이 가지만 그 규모가 너무나 초라하다.
도로에 다니는 차들은 대부분이 장난감 같은 경차들 뿐이다. 경차들이지만 꽤 단단하고 예뻐보여 호주머니에 넣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로 앙증맞다. 집들 역시 규모가 매우 작고 주택들이 늘어서 있지만 정원은 거의 없고 문들 역시 너무 작다. 변화무쌍한 기후와 척박한 섬이라는 제한적인 여건에서 살다보니 그러리라 짐작은 간다.
문득,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이어령씨 책의 내용이 떠오르면서 일본인들의 검소함이 느껴진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너무 답답해서 못 살 것 같다. 우리나라 어느 섬을 가더라도 여기보다는 넉넉하고 여유롭다. 시내 중심을 가로지르는 도로 외에는 넓은 길은 거의 없다.

 그런데 어디를 가나 도로가에 주차한 차를 볼 수 없다. 일본은 도로변에 주차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본인의 주차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뒷골목에도 휴지, 담배꽁초 하나 없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너무 깨끗해서 미안하여 버리지를 못하는 것 같다. 후미진 골목은 물론 간선도로까지 지저분한 우리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일본인들의 이런 점들은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것들이다.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바다와 연결된 폭이 좁은 수로에는 숭어와 복어 등 각종 고기들이 무리를 지어 유영하는 모습이 흡사 양어장을 방불케 한다. 모두들 가던 길을 멈추고 넋을 잃고 바라본다. 한 투망만 건져도 하루 저녁 회식은 하고도 남겠다 생각하니 군침이 돈다. 그만큼 환경을 깨끗이 관리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정성을 엿볼 수 있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옛 이즈하라 성문인 고려문에 당도했다. 고려문이란 에도시대(1600년대)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맞이하기 위하여 만들어서 붙여진 명칭인데 현재의 형태는 태풍으로 훼손된 것을 1987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고려문을 지나 조선 후기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이끄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아메노모리 호슈의 현창비(뚜렷한 공적을 기리는 비)인 성신지교린비(誠信之交隣碑)를 살펴보고, 조선통신사비를 배경 삼아 사진촬영을 하고 각종 유물이 전시된 대마역사 자료관을 둘러 보니 대마도에서 우리 선조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다.

 옛날 대마도주가 기거했다는 금석성으로 발걸음을 돌리었다. 지금은 자그마한 야외 수영장과 간단한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고, 한 무리의 아이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면서 한쪽 구석에서 혼자 쓸쓸히 서서 옛날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덕혜옹주 결혼 봉축비 앞에 서니 나라 잃은 황족의 비참함에 가슴이 찡해온다.
덕혜옹주는 고종과 후궁 양귀인 사이에서 태어난 고종의 고명딸로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대마도주 후예 종무지와 강제 결혼하여 딸 마사에(正惠)까지 낳았으나 본인은 심각한 지병으로 종무지와 이혼하고 딸마저 자살하는 등 비참한 일생을 마감한 비운의 조선 마지막 황녀이다.

 덕혜옹주의 비참했던 삶과 강제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봉축비 사이의 큰 괴리감을 느끼면서 발길을 대마도 대표적인 신사로 알려진 팔번궁으로 향했다.
삼한을 정벌했다는 신공황후를 모신 곳으로 알려진 팔번궁 신사는 역사 왜곡의 핵심인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되는 곳으로 우리로서는 정말 기분이 언짢은 곳이다. 지금도 일본 우익세력들은 날조된 이 사실들을 근거로 역사 왜곡에 혈안이 되어 있다.
신사 입구에 여러 줄의 수많은 비석들이 늘어서 있는데 자세히 보니 전부 돈 액수를 적은 비석들이다. 아마 신사에 기부한 기부금을 적은 것 같은데 액수에 따라 비석의 크기가 달라 여기서도 금전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쓴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한 쪽에는 여러가지 판자조각과 종이쪽지에 소원을 적어 매달아 놓은 것이 보인다. 옛날 일본 본토 신사를 방문했을 때도 신사 앞에 수백 미터는 됨직하게 소원을 빈 종이쪽지들을 볼 수 있었다. 소원 빌기를 특히 좋아하는 일본인의 독특한 성향을 짐작케 한다.

 금석성과 팔번궁 신사에서의 답답한 심정을 가슴에 담고 면암 최익현 선생의 절개가 그대로 간직된 오늘의 마지막 관광지인 수선사로 향했다.
자그마한 경내에는 납골장 비석들이 늘어서 있고 한편에 大韓人崔益鉉先生殉國之碑 라고 적인 비석이 쓸쓸히 서 있다.
우직할 만큼 불의에 굽힐 줄 몰랐던 최익현 선생, 구한말 요직을 두루 거친 지조가 굳은 대표적인 선비 최익현 선생, 󰡒내 목은 잘라도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고 단발령에 끝까지 맞서고, 을사조약이 채결되자 의병을 모집하여 일제에 항거하다 실패하여 대마도에 유배된 의병장이며 유학자인 최익현 선생은 끝내 일본이 주는 음식을 거부하고 단식으로 투쟁하다 숨을 거두었다.
순국비 앞에서 잠시 묵념을 하고, 자신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 절개와 지조를 헌 신짝처럼 차 버리는 우리들의 현실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진다.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를 참배하고 나니 울적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고 한국민의 긍지가 느껴진다.

 가이드의 안내로 면세점에 들러 여러 가지 상품들을 둘러 보았으나 살 만한 물건이 없다. 아내에게 기념될 만한 물건을 골라 보라 했으나 역시 마음이 동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면세점이라고는 하나 엔화 가치의 상승으로 가격만 비싸지 우리 상품보다 나은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상품들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새삼 짐작할 수 있다.
관광으로 지친 몸을 쉬기 위해 면세점 앞 수로를 가로지르는 다리에 쭉 앉아 있는 폼들이 흡사 역 대합실에 쭈그려 앉은 노숙자들 같아 보여 웃음이 나온다.
온천으로 오늘의 피로를 풀겸 인근의 대아호텔로 향했다. 그런데 목욕탕이 너무 작고 수건이나 옷장도 없이 바구니만 놓여있는 것을 보니 70년대 우리나라 동네 목욕탕 수준이다. 아무리 외딴 섬이라도 호텔 목욕탕 수준이 이 정도라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온천 왕국답게 물은 좋아 샤워를 하고 나니 피부가 매끄럽다.

 다시 차를 타고 삼나무가 우거진 숲속 좁은 길을 따라 해변가에 위치한 민박 숙소에 당도 했다. 아늑한 바닷가에 자리잡은 숙소는 건물은 볼품이 없었으나 경치만은 정말 좋다. 고요한 앞바다에는 그림같은 섬들과 그 너머에는 어선 몇 척이 평화롭게 떠 있다.
입담 좋은 한국인 주인 아주머니의 너스레에 같이 버스 투어를 한 일행들이 웃음으로 화답을 한다. 식탁 가운데를 사각으로 크게 잘라내고 이글거리는 숯불 위에 석쇠를 얹어 갖가지 먹음직한 해물 바비큐를 준비해 둔 것을 보니 군침이 절로 돈다. 세우 오징어 조개 닭고기 돼지고기 등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다.
소주잔이 한 순배 돌고 버스 투어를 같이 한 분당 마라톤 클럽 회원들, KT마라톤 회원들, 여행차 온 사람들과 정다운 인사를 나누고 취기가 오르자 노래가 시작되고 소주와 아사히 맥주잔이 분주히 왔다 갔다하면서 흥취가 절로 난다. 모두가 내일 난코스를 뛰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채....

 대회를 마치고 이런 자리라면 밤을 새워 마셔도 좋겠건만 목운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못내 아쉽다. 내일을 생각하니 이건 아니다 싶어 슬그머니 자리에서 벗어나 바닷가 자갈밭에 앉아 멀리 캄캄한 바다를 응시하면서 내일 마라톤을 상상해 본다.
이미 대마도 마라톤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우리 클럽 회원에게 코스의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라는 정보를 들은 지라 30도 이상의 무더위 속에서 난코스를 뛸 생각을 하니 취기가 삭 가시고 걱정이 앞선다.
김우진이사도 걱정이 되는 지 일행에서 빠져나와 옆에 앉는다. 한참을 지나서야 바비큐 파티가 끝나고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일찍 잠자리에 든 것도 아닌 데 박회장의 기상 소리에 눈을 뜨니 시계가 3시를 가리키고 있다. 억지로 눈을 감았으나 잠은 달아난 지 오래다.
한참을 뒤척이다 바닷가로 나가니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다. 바닷가를 어슬렁거리며 수석감을 찾았으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 대회장인 히타카츠까지 가려면 2시간 가까이 버스로 달려야 하므로 전복죽으로 일찍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바닷가를 거니는데 날이 점점 밝아 오면서 멀리 있는 섬모퉁이가 훤해 지는가 싶더니 일출의 장관이 펼쳐진다.
일출은 역시 바다에서 감상해야 제 맛이다. 대마도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일출의 장관을 볼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황홀한 대자연의 조화에 모두들 넋을 잃고 바라본다. 기념촬영을 마치고 드디어 마라톤 대회장으로 향했다.

 울창한 산림속으로 난 꼬불꼬불한 좁은 도로 위를 버스가 곡예를 한다. 대마도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이 도로는 2차선이다가 어느 곳에서는 1차선으로 바뀐다. 한참을 가니 자그마한 어촌마을이 나타난다. 어구를 손질하는 어부들의 모습이 무척 한가롭게 보인다. 회원들 모두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있다.
가이드의 안내 방송에 눈을 뜨니 그리 길지 않은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상,하 대마도를 가르는 만제키바시(만관교)라는 이름을 가진 다리인데 군사용 목적으로 인공운하를 뚫고 그 위에 철제 다리를 놓은 것이다.
일본인들의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제독의 탁월한 전술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대마도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전멸시킨 역사의 현장으로 러일전쟁 승리의 원동력이 된 곳이란 설명을 들으면서 도고제독 이야기에 문득 성웅 이순신제독이 떠오른다.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도고제독에게 외신기자들이 󰡒제독의 업적은 영국의 넬슨제독과 견줄 만하다󰡓는 칭송에 도고제독은 󰡒나를 넬슨에 견주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제독에 견주는 것은 불가하다. 내가 이순신제독의 휘하에 있었으면 하사관도 못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도고제독이 가장 존경한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적장인 이순신제독이었으며, 러시아 발틱함대와의 결전을 앞두고 이순신제독의 사당을 참배하여 승전을 기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보면 도고제독은 약삭빠른  일본인 중에서 드물게 진정한 무인의 기개를 엿볼 수 있는 장군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버스는 대회장인 미우다 해수욕장 입구에 도착한다. 외딴 섬에서 개최되는 대회인지라 아담한 규모로 마치 동네 운동회의 분위기다. 길가에는 온갖 깃발이 나부끼고 여러 가지 인형 마스코트 모양을 한 도우미들의 모습에서 축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버스에서 내리니 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30도는 넘는 것 같고 등줄기에서는 벌써 땀이 배어난다. 출발 아아치를 바라보면서 주로를 살펴보니 기가 질리게 출발부터 엄청난 오르막이다. 이 무더운 날씨에 오르막 주로까지 사람 기를 팍팍 죽인다.
배번을 수령하여 달고 경품 추첨을 하러 가보니 본인이 직접 원통을 돌려 나오는 번호로 결정하는 광경이 매우 재미있다. 나는 추첨운이 별로라 아내한테 두 번 하게 했는데 우리 회원 중 유일하게 당첨되어 천으로 만든 가방을 받아들고 싱글벙글한다.

 드디어 9시가 가까워지자 하프 주자들이 출발선에 집결하라는 방송이 들려온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참가하기 때문인지 일본어로 방송이 끝난 다음 한국어로 재차 방송을 한다. 곳곳에 한글 안내문이 붙어 있는 것을 보니 외국이라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350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 특이한 점은 30대 주자들이 가장 많고, 40대가 그 다음이고 50대 이상은 얼마되지 않는다. 40대가 가장 많고 50대가 그 다음을 차지하고 30대가 가장 적은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고, 또한 2Km, 3Km 종목을 만들어 초등학생, 중학생들을 대거 참여시키는 것을 보니 젊을 때부터 건강을 챙기는 마라톤 선진국 일본의 한 면을 엿볼 수 있다.

 9시 정각 드디어 출발 신호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선수들은 경사도가 만만찮은 오르막을 힘차게 오른다. 초반부터 오르막과 무더위로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다행히 오르막이 길지 않아 자그마한 고개를 두 개 넘고 가뿐 숨을 고르고 나무 그늘로 접어드니 살 것만 같다. 무더위에 코스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 내리막에서도 속도를 높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뛰다 보니 선두그룹과 점점 거리가 벌어진다. 선두그룹의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이 험한 코스를 평지 달리듯 치고 나간다.
 안내 책자에 보면 해마다 본토의 선수들을 초청하는 모양인데 그 기록들이 굉장하다. 무더위와 난코스에도 불구하고 1시간 7분으로 완주한 기록도 있으니 이번에도 일본 본토에서 뛰어난 선수들이 훈련차 참가한 모양이다.
내리막에서 평지로 접어들면서 조그만 어촌마을이 나타난다. 도로를 따라 만들어진 수로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깨끗이 정돈된 도로 주변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나와 힘찬 응원을 한다. TV를 통해서 본 일본 프로야구 중계 때의 그 열렬한 응원 장면이 생각나면서 역시 응원문화는 우리보다 한 수 위인 것 같다.
하이또(화이팅)! 간바떼(힘 내세요)!를 외치며 열렬히 응원하는 주민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를 하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면서 뛰다 보니 급수대가 눈에 들어온다.
도우미 여학생들이 물컵을 들고 서로 자기 것을 마셔 달라고 손짓을 하는 적극적인 모습에 작은 감동이 느껴진다. 우리와는 달리 급수대 맨 앞에는 물, 가운데는 스포츠 음료, 끝에는 스펀지를 두고 주자들이 골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단숨에 몇 모금 마시고 별 생각없이 길가에 컵을 던지고 달리는데 10m 정도마다 큰 바구니가 여러 개 놓여 있고 일본인들이 컵을 바구니에 던지는 것을 보고, 아차!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컵을 바구니에 던질 수 있도록 배려한 일본인들의 세심한 준비에 감탄하면서  우리가 꼭 배울 점이라 생각된다.

 5Km에서 시간을 채크하니 25분 03초로 평소보다 2분 30초 정도 늦었으나 날씨와 코스를 감안하면 큰 불만은 없다. 여기서부터 다시 고갯길이 시작된다. 꽤 가파른 고개를 넘자 다시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고 더위에 몸은 지치기 시작한다.
분무를 하는 곳에서 모자를 벗고 물을 흠뻑 맞으니 살 것 같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것도 잠시 터널 두 개를 통과하고 다시 고개를 넘으니 10Km지점이다. 시계는 50분 26초를 가리킨다. 좀 늦은 기록이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40대의 일본인 두 명과 계속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자존심 대결이 펼쳐진다. 아마 나와 비슷한 기록을 가진 사람들이라 짐작된다. 멀리 바다의 그림같은 경치를 감상하면서 다시 제법 긴 터널을 통과하니 이 코스에서 가장 높은 고개가 기다리고 있다.
비록 지친 몸이지만 일본인한테 지기 싫어 기를 쓰고 오르막을 올라 본다. 내리막으로 접어 들면서 속도를 조금 높여 보지만 지쳐가는 몸에 더운 날씨와 어제 저녁에 먹은 곡차 탓인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15Km 급수대에서 목을 축이며 시간을 보니 좀 실망이다. 1시간 17분 11초가 지나고 있다. 그 사이 뒤따라 오던 일본인 두 명 역시 지친 표정이지만 나를 앞질러 간다. 오기가 발동하여 바짝 따라 붙는다.
좌측으로 아담한 마을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푸른 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약 4Km 정도 평지가 이어지더니 마지막 긴 언덕길이 나타난다. 오르막 몇 구비를 돌고 나니 정말 죽을 맛이다. 힘이 거의 다 빠진 상태에다 막판에 만난 긴 오르막은 마치 울트라나 풀코스의 골인 직전처럼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다. 억지로 고개마루에 오르자 이때부터 내리막이다.
지친 몸으로 마지막 스퍼트를 하여 앞서 가던 일본인 2명을 기분 좋게 추월하고 골인! 습관대로 손이 저절로 시계의 정지 버튼을 누른다.
1시간 50분 54초! 평소보다 15분 정도 늦은 기록에 약간은 실망이지만 나와 비슷하게 들어온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기록보다 15분에서 20분 정도나 늦다고 하니 50대 후반의 연식에다 날씨와 코스를 고려한다면 괜찮은 것 같다. 한국 하프 참가자 중 제일 잘 뛴 사람이 8등이라고 방송을 한다.

 현장에서 기록증을 받아 주최측이 마련한 호텔 온천욕을 하고 도시락을 먹으면서 소라 껍질을 술잔삼아 소주 몇 잔을 걸치니 기분이 만땅이다.
정오 무렵 대회가 끝나고 뒷정리를 하는 데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규모가 작은 탓도 있지만 참가자들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도 않고 도우미들이 순식간에 깨끗이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회 후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우리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맑은 날에는 부산이 보인다는 한국 전망대 관광 후 여객 터미널에서 간단한 출국 수속을 마치고 쾌속선은 16시 40분경 대마도를 뒤로하고 부산으로 향한다.
여독 탓인지 피곤하여 잠시 눈을 붙이는데 여행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창밖을 보니 무엇이 수면 위를 튀어 오른다. 몇 마리가 튀어 오르는가 싶더니 단체로 수면 위를 한참을 날다가 물속으로 사라진다.
날치가 난다는 것은 들었으나 이렇게 50여m를 떼지어 나는 장관에 넋을 잃고 바라보면서 문득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미군 항공모함을 향해 떼지어 날아드는 일본 가미가제 비행단의 모습과 흡사하다.
날치의 묘기가 끝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고래떼들이 무리지어 이동을 하는 장관이 펼쳐진다. 요즈음은 고래 포획이 금지되어 그런지 수많은 고래떼들이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무척 한가롭게 보인다.
멋진 광경들이 사라진 후에도 아쉬움에 한참을 창밖을 응시하는데 갑자기 물빛이 탁해 보인다. 자세히 보니 수많은 해파리떼들이 온 바다를 뒤덮고 있다. 해파리떼 때문에 고기잡이를 할 수 없다는 어민들의 탄식을 보도를 통해 들은 적은 있으나 이렇게 심각한 줄은 몰랐다. 어장 보호를 위해 정부 차원의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어느덧 쾌속선은 부산항에 입항하고 일본에 비해 총알 입국수속을 마치고 양산 지하철에 몸을 실으면서 이번 여행의 마침표를 찍는다.

댓글목록

대마도님의 댓글

대마도 작성일

  황병준님 주옥같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입국 수속의 지연문제는 그날 선박이 만실이라 더 했던것 같습니다.  조만간 입국실의 규모를 확대하겠다는 대마도측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번 마라톤 대회에서 우리 팀 여성부 참가자님들이 상을 휩쓸었는데 남성부에서 시상 하신분이 안계셔 이상하다 했는데......그 원인을 이제야 알아내었습니다..ㅎㅎㅎ
내년에도 참가하셔서 더 멋진 완주를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영국님의 댓글

김영국 작성일

  황병준 님의 대마도 마라톤 후기 잘 읽었습니다. 글 솜씨도 대단 하시네요.
저도 금년에 대회 참석하려 했는데 직장 사정으로 여의치 못하여 내년으로 미루었지요.
일본 젊은 선수들의 기록에 근접하지 못 한다니 당연한 사실이라 여겨집니다.
연대별 순위를 책정 한다면, 우리나라 매니아들이 입상권에 들 수 있을텐데, 대마도 투어에서 건의하여 연대별 시상제도를 운영해야 많은 달림이들이 해외관광 겸 대회에 참석할 수 있지 않나 여겨집니다.
 운동을 통하여 항상 건강 하시길.......

황병준님의 댓글

황병준 작성일

  김영국님! 졸필을 칭찬해 주시니 부끄럽습니다. 저도 참가하기 전에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했으나 참가기가 없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졸필이나마 좀 길게 적어 보았습니다. 앞으로 달림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연대별 시상이 있다면 우리 매니아들도 입상하는 분들이 꽤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섬코스라서 그런지 오르막 내리막이 심한 편이므로 언덕 훈련을 많이 하여 참가하시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년에 멋진 레이스를 기대합니다.

대마도님의 댓글

대마도 작성일

  현재 연령대별 시상을 하고는 있지만 더 세밀하게 나누어서 연령대별 시상을 할수 있도록 적극 건의하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을걸로 생각합니다.